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그림일기

너는 고맙고, 나는 미안하고. 집 안팎의 일들로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주의 어느 저녁. 전날까지 며칠 집을 비운 뒤라 반찬도 장 봐 놓은 것도 없이 냉장고는 텅 비고 체력도 방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마침 남편도 늦는다기에 아침에 끓여놓은 국에다 대충 찬밥만 넣어 말아 먹으려다가, 아이 국에는 당면을 조금 삶아서 넣어줬다. 먹기 싫다고 하면,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인 김이나 치즈를 내밀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눈치를 살피는데... 다행히, 후룩후룩 쩝쩝 잘도 먹었다. 게다가 방긋거리며 "맛있는 거 해줘서 고마워~!"라고까지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김과 치즈를 누르고 최근 급부상한 밥상의 지원군, 당면의 위력을 실감하는 한편, 아이의 고맙다는 말에 썰렁한 식탁이, 축 쳐진 내 어깨가 더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 더보기
젖먹던 기억이 궁금해 수유 중인 여동생, 조카, 그리고 이 모든 게 신기한 우리 딸내미.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이모가 부끄럽대도. 너도 아가처럼 쭈쭈를 먹었냐고? 무슨 맛이냐고? 저런, 젖먹이 때는 기억이 잘 안나는가보구나. 젖 먹다말고 까만 바둑알 같은 눈으로 종종 나를 빤히 쳐다보던 이유가 궁금해서 나중에 말이 통하면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20160111_ENID 더보기
엄마 분발하고 있대 2016년을 그 누구보다 활기차게 시작해보려고 했건만, 연초부터 감기와 그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내내 안좋았다. 그래도 연휴인데 집에서만 노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근처 실내놀이터라도 데리고 가자며 길을 나섰는데 자동차 룸미러로, 누렇게 떠 다크써클이 코밑까지 내려온 내 얼굴이 보이는거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가방 속에 화장품 파우치를 주섬주섬 꺼내서 다크써클이라도 좀 가려보고자 애를 쓰고 있던 중,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던 딸 아이가 "엄마, 뭐해?"하고 물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분 바르고 있어."라고 대답했는데, 내 말을 들은 아이가 아빠한테 하는 말. "아빠, 엄마 분발하고 있대." 한바탕 웃고 나서 드는 생각. 올 한 해, 아이 말대로 분발해야겠다. 여러가지 면에서. (특히, 건강 관리.. 더보기
너의 첫 운동회 지난 토요일,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가족 운동회에서,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으며,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기, 응원해주기, 그리고, 두 팔 벌려 안아주기. 더보기
네게 잘보이고 싶어서. "엄마, 머리 묶지 말고 풀고 있어. 그게 예뻐." "엄마는 안경 쓴 게 더 잘 어울려." "엄마 웃을 때가 제일 좋아." "엄마, 그 티셔츠 말고, 저거.. 저 부엉이 있는 티셔츠 입은 게 나는 좋아." "엄마도 선생님처럼 바지 말고 치마 입어." 네 살 짜리 딸 아이의 쫑알쫑알 잔소리를 무심히 웃고 넘겼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서, 딸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자꾸만 거울을 보게 되는 요즘. ENID 더보기
머릿 속도 지끈지끈 공사중 추석 연휴때 잠깐 조용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3주째 윗집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이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오늘의 소음은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서 머리가 지끈지끈 우지끈. 윗 집에서 나는 소린지, 내 머릿 속에서 나는 소린지. 2015년 10월 2일. ENID. 더보기
너와 너의 작은 친구, 악어 이야기 일주일 전, 딸 아이의 빙봉이나 다름없는 악어인형을 잃어버렸다. 아이에게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크나큰 슬픔이었던지, "악어야~~~~"를 외치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목놓아 울기만했다. 그런 딸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고... 하도 닳고 닳아 내가 손수 기워주고 솜도 넣어준 데다가 이제는 가족처럼 되어버린 그 녀석의 빈 자리가 나조차 허전해서, 엄마가 악어 꼭 찾아주겠다며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니던 길을 몇 번이고 되짚어서 샅샅이 뒤지고, 들렀던 마트, 병원 CCTV를 모조리 확인하고, 전단지까지 만들어 붙였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온갖 인형 판매 싸이트를 뒤져서 닮은 인형도 주문해놓았다. 그런데 그 날 오후 늦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앳된 목소리로 "엊저녁에.. 더보기
치과에서 딸 아이 7개월 무렵, 밤중 수유 끊으려고 할 때 며칠 동안 밤마다 젖 달라고 목이 쉬도록 울어 제꼈다. 없어서 못 주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목 놓아 우는데 그까이꺼 나중에 양치질 잘시키면 되지 쉽게 생각하고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젖을 먹여 재웠다. 돌이 지나서야 겨우 밤중 수유를 중단했지만 아이의 앞니는 이미 충치가 진행되고 있었고, 틈틈이 양치질을 해주고, 석 달에 한 번씩 검진에, 불소도포에, 갖은 애를 썼건만, 충치는 계속 커져만 갔다. 이제 충치 치료가 가능한 나이가 되기도 했고, 더 이상 미루다가는 영구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충치 치료를 하게 됐는데, 어찌나 울던지... 어찌나 안쓰럽고 미안하던지... 엄마로서 좀 더 모질어야 했음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2015082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