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 놀이/기타 놀이들

아이가 찍은 가을 사진 전시회

 

저희 집에는 구입한 지 10년 쯤 된 똑딱이 카메라(휴대용 디지털 카메라) 한 대가 있어요.

구입할 당시만 해도 그럭저럭 쓸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휴대폰에 탑재된 카메라 성능이 월등히 좋아서, 굳이 그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게 되더군요.

아마 최근 4~5년 동안 한 번도 꺼내든 적이 없었을 꺼예요.

올 해 초, 딸 아이가 그 카메라를 책상 서랍에서 발견하기 전까지는요.

 

그 즈음, 체리양은 온 집 안의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고 그 안의 물건들을 죄다 꺼내 놓고 놀곤 했어요. 그러던 중에 컴퓨터 책상 서랍 속에서 몇 년 째 잠 자고 있던 카메라를 발견했던 거예요.

그 물건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일단 사진 찍는 카메라라고 간단히 설명만 해주고 (그 때까지 아이는 사진 찍는 건 핸드폰인 줄 알고 있더라구요)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넣어두려다가,

그냥 두고 썩히느니 아직 제대로 작동하는지 볼 겸, 방전된 배터리를 오랜만에 충전해 넣었어요.

그리고는, 아이에게 카메라 켜고 끄는 법과 화면을 보고 손가락으로 셔터 누르는 방법을 알려줬지요. 함부로 던지거나,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약속했구요. 어차피 그동안 쓰지도 않고 쳐박아 두었던 물건인데, 아이가 망가뜨리는 건 왜 그렇게 걱정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옛날 필름 카메라나 어른이 만지기에도 조심스러운 고가의 카메라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체리양이 처음 찍은 사진들은 대략 이랬습니다.

마구 흔들리거나, 렌즈를 가린 손가락 끝만 보이거나.

 

처음에는 이렇게 셔터를 마구 눌러대다가, 카메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제게 다시 가져다주고 오히려 카메라 파우치를 가지고 놀더라구요. 제 손에 쏙 들어오는 주머니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후, 카메라는 그냥 원래 있던 책상 서랍에 넣어뒀어요. 아이는 이따금 카메라를 꺼내 가지고 놀곤 했구요.

 

그렇게 한 달 쯤 지나...

무심코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을 봤는데 그새 꽤 많은 사진들이 찍혀있었고,

그 중에는 아래와 같은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처음보다 사진을 꽤 제대로 찍을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사진에서 아이의 눈높이와 시각이 느껴지는 것이, 꽤 흥미롭더라구요.

 

그래서, 사진이 좀 모인 후에 프린트해서 방의 한쪽 벽에 함께 붙여놓고는, 우리끼리 사진전을 열었어요.

 

그리고 이번 가을...

아이와 함께 바깥 나들이를 다닐 때 저 휴대용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어요.

사진 찍고 싶다고 할 때, 찍을 수 있도록요.

 

올 가을에 아이가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사진 찍는 아이의 모습을 틈틈이 기록해두었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요.

왼쪽 사진은 아이가 찍은 사진, 오른쪽은 아이가 사진 찍는 모습을 제가 찍은 것입니다.

 

 

 

아이는 생각날 때 잠깐씩 카메라를 달라고 해서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이내 뛰어 다니며 놀았지만,

사진 찍을 때 만큼은 사물과 풍경을 굉장히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아이 덕에, 평소 무심코 지나쳐버리곤 했던 것들을 좀 더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얻었구요.

 

아이가 올 가을 한 달 여 동안 찍은 사진들은

그 중 괜찮은 것들을 함께 골라 우리끼리 가을 사진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요.

 

'전시회'라고 하니 좀 거창하지만,

나들이하며 찍은 사진들을 방의 빈 벽에 붙여 놓고 가족들끼리 같이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랍니다.

 

사진들을 인쇄(일부는 집 프린터 잉크가 떨어져 인화)한 후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함께 골라 큰 도화지에 붙이고,

도화지들을 벽에 갖다 붙이니 전시회 준비 끝.   

 

저는 사진들 앞에 서 있는 아이를 찍고, 아이는 그런 저를 찍었어요.

가을 사진전 기념 촬영인 셈이예요.

 

사진전은 아마도, 앞으로 두어 달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우내 찍은 다른 사진들이 벽을 채우기 전까지는요.

 

 

"아이의 가을 사진 전시회"에 대한 오늘 글은 여기까지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