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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자매의 시간

30년 전의 우리 자매.

이 여자애들이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각자의 배우자들을 똑닮은 딸을 하나씩 낳아 키우고 있다. 

(공교롭게도 막내인 남동생에게는 올케와 똑 닮은 아들이 한 명 있으니, 우리 세대도, (아직은) 2세들도 삼남매.)

 

그리고 이번 주 일요일, 여동생은 주재원으로 파견 나가는 제부와 함께 3년 동안 도쿄로 이민을 떠난다.

제부는 연초에 도쿄로 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동생은 살던 집 정리를 하고 짐을 부치는 등의 뒷정리를 한 후 친정 식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기가 어린 탓에 한 달 남짓 각종 유아용 편의시설과 장난감이 구비된 우리집에서 주로 함께 지냈고, 출국 직전인 이번 주는 친정 부모님댁에 있기로 했다.

 

세상 둘도 없는 천생 친구인 여동생과 그녀의 아기를 곁에 두고 함께 지낸 경험은, 내겐 매우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다.

결혼 전과는 다른 주제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해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졌고, 공감대가 더 풍성해진 느낌.

마냥 왈가닥같던 여동생이,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제 아이를 안고, 젖을 물리고, 옹알이를 하며 기어다니는 아기와 함께 뒹굴며 깔깔대던 모습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또 엄마를 닮아 유난히 잘 웃는 아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집 안 구석구석에 이들의 모습이 배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위기가 있었으니... 

 

처음에, 딸 아이는 6개월된 사촌동생이 신기하고 귀엽다면서도 샘이 많이 나는지, 내가 조카를 예뻐하거나 안아줄 때마다 서운한 티를 냈다. 지금껏 엄마 아빠의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해왔는데, 제가 봐도 조그맣고 귀여운 경쟁자가 갑자기 나타나 방긋거리며 집 안을 기어다니고 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기를 볼 때마다 딸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다섯 살 샘쟁이는, 아기 뿐만 아니라 내가 제 이모와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질투를 해서 우리가 수다를 떨 때면 "엄마는 나랑만 놀아"하면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함께 지내고 며칠 안 있어 급기야 이모랑 애기가 갔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세상 둘도 없는 천생 친구와 귀염둥이 조카에 대한 내 마음에 딸 아이가 상처 받았나 싶어서 아이에게도, 죄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동생한테도 참 미안하고 난감했다.

그래서 동생이랑 수다를 떨거나 아기를 안아주는 것은 최대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거나 자는 동안에 하고, 육아서를 뒤져 '첫 아이에게 동생이 생겼을 때' 같은 챕터를 참고하며 아이를 달래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이모는 샘쟁이 첫조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매일 맛난 간식을 준비해놓고.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나니 아이의 행동도 달라지기 시작해서, 아기를 제법 잘데리고 놀기도 하고, 장난감을 스스로 양보하기도 하며, 기저귀를 갖다주는 등의 심부름도 잘 해냈다. 이제 서로 좀 익숙해지니 동생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번 경험이 아이의 마음이 자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나 역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래본다. 

 

 

어쨌거나, 시간은 뭐가 그리 바쁜지, 참 빨리도 가버렸다. 이제 출국까지 닷새밖에 안남았다니.

앞으로 3년 동안의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길. 몸도 마음도 지금처럼 건강하길.   

 

 

나중에, 우리가 늙고, 아이들이 다 커 버린 후에도... 

잠시동안이나마 한 집에서 살며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서로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남편들은 살피지 못하는 서로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꿈 같은 계획을 세워보던 젊은 우리의 시간이 내내 그리울 것 같다. 

 

 

(PS. 동생들+아기. 어렸을 때 박터지게 싸울 때만 해도 지금 이렇게 서로 아끼고 잘 지낼줄 상상도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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