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이야기들

악어의 새 옷

며칠 전 딸 아이가 "우리 악어는 털이 짧은데..겨울이라 추울꺼 같애."라면서,

악어에게 옷을 입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이 블로그를 자주 방문 하신 분들은 아마 아실테지만) 악어는 딸 아이의 애착인형이예요.

딸 아이가 직접 지어준 인형의 이름은 '아거(아가+악어?)'이고, 다른 이름을 붙이는 건 싫다고 했어요.

 

어쨌거나, 딸 아이의 뜻에 따라 집에 있는 자투리 펠트지를 가지고 후다닥 조끼 하나를 만들어 줬지요.

앞판과 뒷판은 바느질로 이어 붙였고, 주머니랑 아이가 직접 그린 단추는 글루건으로 붙인 후 앞 섶에 벨크로를 달아주니, 모양도 제법 그럴 듯 하고 아이가 스스로 악어의 옷을 입히고 벗길 수 있어 꽤 괜찮은 것 같았어요.

아이도 악어가 새 옷을 입으니 더 멋져보인다며 흡족해했구요.

  

 

그런데, 펠트지로 대충 만들어서 그런지 아이가 하루 종일 입혔다 벗겼다를 반복했더니 어깨 바느질 한 부분이 금세 너덜거리더라구요.

 

아무리 인형 옷이지만 너무 대충 만들었나 싶어서, 집에 있던 청바지 천조각으로 다시 옷을 만들었어요. 이번엔 양쪽 어깨에 똑딱이 단추를 달아서 입히고 벗길 수 있도록 했답니다. 다행히도, 아이는 악어의 새 옷이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옷이 꽤 잘 어울리죠?

 

 

이 인형을 처음 만난 건, 아이 16개월 즈음...

지인의 집에서 모임이 있던 날이었어요. 장난감이 없어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집 주인장 언니가 서재 방 책꽂이에 진열해두던 인형 몇 개를 잠시 빌려줬었어요.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오려는데 유독 저 악어 인형을 잡고 놓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데려오게 된 악어 인형인데, 집에 있던 다른 인형들을 모두 제치고 아이의 절친이 되었어요. 토끼도, 곰돌이도, 강아지도 아닌, 악어가 말이죠. 이 녀석은, 아이와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생들 결혼 사진에도 마치 가족인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저도 이제 이 녀석이 가족처럼 느껴진답니다.

 

그러니 몇 달 전, 이 인형을 잃어버렸을 때 아이는 내내 울기만 했고, 저 또한 마음이 안좋아서 전단지까지 만들어 붙였던 것이지요. 전단지 붙이면서 건물 경비원 아저씨께 "사람이 없어져도 못 찾는 판국에 그깟 인형이 대수냐."고 핀잔은 들었지만요. 지금은 이 모든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으니, 천만 다행이예요. 

(관련 글 "너와 너의 작은 친구 이야기")

 

 

아 참, 얼마전에 길을 가다가 제가 동네에 붙인 전단지를 보고 악어를 찾아준 소녀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저도 모르게 얼싸 안을 뻔 했어요. (실제론 어깨만 살짝 두드려줬어요.)    

 

 

생각난 김에, 아이가 악어 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들 중에 몇 장 올려볼께요.

 

<악어와의 소꿉놀이>

 

<숨바꼭질>

 

<인형의 인형>

 

<코수술이 필요해>

 

<잘 봐, 저게 잉어라고.>

 

<옥토넛 친구들로 치장한 악어>

 

 

 

마지막 사진은 딱 작년 어제 찍은 것인데, 요즘도 매일 저러고 잡니다.

 

 

좀 있으면 어린이집서 아이를 데려올 시간인데, 오늘도 추우니 새 옷 입혀서 데리고 나가야겠어요.

대개는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할 때 가방에 넣어가지고 가지만, 어차피 거기서는 집에서 가지고 간 장난감이나 인형을 가지고 놀지 못해서 그런지 가끔 집에 두고 갈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엄마가 이따 악어 데리고 오세요."라며 제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이제는 닳고 닳아 색이 바래버린 인형에게 옷까지 해 입히면서,

사람사이의 인연뿐만 아니라 사물과의 인연이라는 것도 참 신비롭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주절거려봤구요,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도 하루하루, 주변 사람들, 사물들과 좋은 인연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일상의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합니다.  (3) 2016.04.16
자매의 시간  (15) 2016.02.16
Do you hear the people sing?  (4) 2015.11.18
그릇 안에서 기어다니는 밥풀 아기  (21) 2015.09.09
가족(足)사진  (10) 201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