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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들

누에에게 안녕을 고하며

3주 전, 체리양이 어린이집에서 너를 처음 데려왔을 때는 그저 패닉 상태였단다.

 

 

그런 나와는 달리 너를 귀여워하는(!) 체리양를 보며 하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런데, 손바닥 만 한 뽕잎을 하루에 서 너 장씩 먹어치우며 날로 통통해지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더구나.

 

 

 

  

 

우리 집에 온 지 닷새 째 되는 날,

 

먹성 좋던 네가 뽕잎을 마다하고 꼬물거리기만 하더니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어.

 

 

 

   

밤새 잠도 안자고 분주하게 컵 속을 기어다니면서 고치를 만드는 모습이 너무 놀라워서

 

나도 잠을 이룰 수가 없더구나.

   

   

 

 

 

 

 

 

 

 

 

 

 

 

 

 

 

 

 

 

 

 

너는 그렇게 하루 반 만에 타원형의 새하얀 고치를 만들고 칩거에 들어갔지.

 

 

그리고 며칠 동안 매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구나.

 

일주일이 지나도 고치는 그냥 하얀 고치일 뿐이었어.

 

 

사실, 그 안에서 죽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그러다가

네가 고치 속으로 들어가버린 후 딱 2주 째 되는 날 아침,

새하얀 완결체 같던 고치에 피(!) 같은 게 묻어 있는 걸 발견했어.

 

위엔 구멍도 뚫려 있었고.

 

 

 

 

 

 

 

 

 

 

 

 

 

 

 

 

 

 

 

 

 

 

 

 

 

그리고 그 아래 쪽에는, 

 

두둥~

 

 

 

 

 

 

 

 

 

 

 

 

 

 

 

 

 

 

 

 

 

 

 

 

 

몰라 볼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네가 있었지.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

 

 

신기하고 놀란 것도 잠시...

 

내보내달라고 퍼덕거리면 어쩌나.

어디서 먹이라도 구해 넣어줄까.

 

과연,

 

너라는 생명체를 어찌하면 좋을꼬...

고민에 휩싸이고 말았어.

 

그런데 너는,

 

 

 

이렇다더구나.

 

!!!!! 

 

 

게다가 수명은 일주일 남짓.

 

측은한 존재여...

ㅠㅠ

 

 

이제 더 이상 내가 해줄 것이 없으니,

가서 풀내음, 흙내음이라도 실컷 맡으렴.

 

혹시 아니? 운 좋게 마음 맞는 누에 나방과 만나서 회포(?)를 풀게 될지.

 

네가 만든 멋진 고치와 함께 보낸다.

 

3주 동안 고마웠어.

 

 

잘 가.

 

 

 

 

(닷새 전에 다른 블로그에 올렸었으나, 해킹 때문에 블로그를 이전하면서 다시 올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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